
이 책은 이스라엘 선교사로 사역하는 류모세 선교사의 책입니다. 딱딱한 주석이나 해설서가 아닌 에세이처럼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기에 저도 편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너무 공부 공부 하다보니 가끔 책에 밑줄을 긋지 않거나 memorize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기 때문인데요. 신앙 관련 책을 읽을 때의 장점은 이런 편안함인 것 같습니다.
구성상 31개의 chapter로 나눠서 광야의 민족인 이스라엘 민족의 삶과 습관, 자연환경을 이야기함으로써 성경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저 역시도 책과 저의 삶에 맞닿아 있는 묵상 point를 가지고 글을 남기고자 합니다.
1. 당신은 양입니까?
흔히 성경에서 양과 염소의 비유가 자주 나오는데 이 때문에 양을 온순하고 착한 짐승으로, 염소는 악랄하고 고집스러운 짐승으로 이해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도 그랬구요. 그러나 저자는 양을 '겁이 많고 더위를 많이 타며 어린 풀과 다 자란 풀을 구별하지 못하는 짐승'으로 설명합니다. 반면 염소는 '때로는 저돌적이고 길을 앞질러갈 만큼 지혜롭기도 하며 다 자란 풀만 먹고 더위도 덜 타는 기르기 편한 짐승'이라고 하네요. 양과 염소를 3:1 쯤으로 섞어서 기르는 이유도 이런 염소의 지혜로움을 옆의 양이 따라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동시 겁이 많은 양은 쉽게 골짜기를 내려가지 못하지만 용기 있는 염소가 앞서가면 따라가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돌아보면 전 '염소처럼 행동하려는 양'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스스로 대단히 지혜롭고 용기있다 여겨왔지만, 은근히 더위도 많이 타고 겁도 많으며 먹는 것의 분간도 잘 못하는. 스스로 길을 잃어버린 양이 되어 결국 목자의 음성을 찾는 그런 양이었습니다. 세상에는 더러 대단한 염소들이 많기 때문에 저도 그들 중 한 종자이리라 지레 짐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의 정체성은 목자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어수룩한 양일 뿐입니다.
2. 우편의 그늘
이스라엘 민족의 방위개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동서남북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스라엘은 지중해를 '뒷쪽', 산지방향을 '앞쪽'으로 여겼다고 하네요. 따라서 성경에서 '우편에 그늘이 되신다'는 표현은 남쪽에 위치한 광야의 뜨거운 햇볕을 면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되는 것이죠. 더불어 '동에서 서가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옮기신다'는 표현 역시 남북으로 길게 자리한 이스라엘의 영토적 특징상, 세상의 끝과 끝이 된다고 합니다. 살다보면 상황적으로 허락되는 일들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보면 그 당시에는 완벽하지 않은 일이 정말 완벽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방송사에 입사해서 다른 동기들은 야근에 젖어있을 때도 전 칼퇴근을 했고, 회의에 젖어있을 때는 혁신부서에서 신나게 일을 했죠. 그러나 부서 발령 때는 워낙 악명(?)이 높았던 팀장님 덕분에 공포에 질려 있었습니다. 또 작은 방송사였기 때문에 reputation에 대한 불만도 있었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묵묵히 제 우편에 그늘이 되어 주셨습니다. 적절한 장소에, 넘치는 감격으로 함께 하셨죠. 성경을 찾아보면 50곳이 넘는 장면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장면을 회상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 특유의 묵상 방식인데, 과거를 통해 현재의 신실하심을 바라보는 것이죠. 저 역시도 동일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고 있습니다. 신실하신 주님은 변함이 없으시니까요.
3. 광야의 아침 그리고 밤

회사를 그만두고 뜻하던 일이 잘 되지 않으면서 푹 쉬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저를 아껴주시던 어르신께서 일을 한참 열심히 하다가 쉬면 약간의 공백에 대해 대처할 방법이 잘 서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맞았던 시간이었습니다. 하루를 보내는 방법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또 그렇게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도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라고 할 때 많은 분들이 이스라엘을 찾으셨을 때 적잖이 실망을 하신다고 합니다. 유대광야의 광활함에 놀라기는 하지만 그 척박함에 실망하고, 80년대 개발 도시를 보는 듯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전 지역이 성경에서 묘사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 때문인데요. 그러다 북쪽에 이르러 시온산과 이스르엘 평야, 갈멜산 일대를 보고나면 '아 이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구나'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설명하는 가나안 땅의 젖과 꿀은 '영적 자산'입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나일강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5000명의 수도사가 광야에 거했던 것처럼 광야를 끼고 있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장소입니다. 서쪽 해안가는 블레셋 민족이 거했고 페니키아가 번영했던 곳이지만 물질적 풍요는 영적 빈곤을 유발했을 뿐입니다. 세계 3대 유신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모두 광야에서 태동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광야에서는 텐트만 있으면 낮에는 그늘을 통해 시원함을 누렸고, 밤에는 텐트 천장을 통해 밤하늘을 보며 하나님을 묵상해 왔던 이스라엘 민족의 삶이 고스란히 존재하는 장소입니다. 물론 그 안에는 많은 도적과 짐승의 위험이 있지만 그 이상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 더 없는 좋은 장소라는 것이죠. 어떤 계기를 통해 이것을 깨닫게 하신 후로 제가 가지는 시간이 '광야의 아침', '광야의 밤'입니다. '광야의 아침'은 일어나서 말씀 통독을 정해진 양을 하고 인근 홍제천을 산책하며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이따금 마음이 답답할 때 하나님께 토로하는 이 시간이 제게 가져다 준 유익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더불어 걷다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때가 있는데 이를 통해 미래가 주는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광야의 밤'은 자기 전에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시편과 잠언 그리고 신약의 서신서 묵상을 통해 얻은 유익은 방향성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처럼 광야가 주는 유익은 주님 앞에서 더 연습하고 훈련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쉬운 점은 이를 보다 잘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 책을 쓰거나 노래를 쓰거나 조금 더 잘 즐길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직 제가 그 정도 수준은 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광야지만, 다시 한번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편에 그늘이 되어주시며 양과 같이 우둔한 저를, 오늘도 아침과 밤마다 먹이시고 입히십니다. 아멘.


[이] 달의 책, 그 첫번째 책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 되겠습니다. 사실 여러 목회자 분들로부터 추천을 많이 받은 책이지만, 정작 읽을 기회는 없다가 이번에 선물을 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알다시피 엔도 슈사쿠는 기독교인으로써 이 책을 쓰고 '이 작품 때문에 받을 신학적 비판도 물론 예상하고 있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미리 공세적인 방어를 취했으나 개신교계에서는 비판 대신, 열렬한 환호와 함께 많은 독자들이 사랑한 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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